김동묵 진천우체국 예금보험상담실장
김동묵 진천우체국 예금보험상담실장
  • 임현숙
  • 승인 2015.04.25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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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받은 은혜, 봉사로 갚는다”

백만불원탁회의(MDRT) 회원 인증 세 차례
40년 금융보험에 종사하는 진천의 마당발

▲ 김동묵 진천우체국 예금보험상담실장이 우체국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가슴에 단 MDRT회원마크가 반짝인다.
▲ 김동묵 진천우체국 예금보험상담실장이 우체국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가슴에 단 MDRT회원마크가 반짝인다.
혹자는 김동묵 씨를 '진천의 마당발'이라 칭한다. 또 다른 혹자는 그를 '공인(公人)'이라고도 말한다. 김동묵 진천우체국 예금보험상담실장을 칭하는 이런 호칭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은 긍정의 의미다. 그는 이미 전국 FC(Financial Consultant)들 사이에서 '진천은 몰라도 김동묵이 있는 진천은 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의 나이 68세. 나이는 세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하루하루 활발한 노익장을 펼쳐 보이는 김 실장의 삶은 그래서 의미 있다.

'고객과의 신뢰' 가장 중시
그는 지난 1975년 총무처 공채시험합격으로 기능 13등급 집배원이 돼 이월우체국에 첫 발령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빨간 자전거를 타고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우편배달부가 꿈이었다'던 그는 원하던 우편배달부가 되자 이를 천직이라 여겼다. 그는 한시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지금도 그가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집배원시보기간 중 동사직전의 주민을 구해 체신부장관상을 탄 일화가 회자되고 있다.
그는 “편지를 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행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2년 후 진천우체국으로 발령받았고, 지난 1984년 우체국에 금융업무로 예금보험이 시행되면서 당시 우체국장의 환직 권유로 예금보험업무를 시작했다. 천직이라 생각했던 우편배달부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마음에 썩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그는 1985년 국무총리 모범공무원증 수상을 시작으로 예금보험업무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수많은 상과 표창으로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았다”고 표현했다. 특히, 지난 1999년 체신봉사상 전국대상, 지난 2001년에는 국민에게 희망을 준 사람으로 뽑혀 청와대 영부인 오찬에까지 초대된 일은 잊을 수 없다.
그는 “고객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수많은 표창들은 내가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라 더 잘하라는 '매'”라고 겸손해했다.
“그 매 때문에 열심히 일했고 그 보답으로 봉사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금융보험으로 2막 인생 시작
그는 지난 2005년에 전국 신인왕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매'를 맞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명함 한쪽에 새겨진 MDRT(Millon Dollar Round Table) 마크다. MDRT는 세계 최고 재정전문가로 인정받는 백만불원탁회의 회원임을 나타낸다. 회원이 된다는 것은 탁월한 실적은 물론 유지율, 보험영업활동의 철저한 윤리의식 등 자격평가가 까다롭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크다.
그는 지난 2008년, 2012년, 2013년 전 세계생명보험 재정설계사 중 소수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MDRT회원으로 선정된 바 있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보험모집인 명예의 전당에 그가 세 번씩이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루 24시간을 그 이상으로 살고 사랑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며 지역 봉사에 최선을 다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지역에서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며 “그 보답이 봉사”라고 덧붙였다.

“끝까지 지역봉사 매진”
그는 현재 (사)대한노인회진천군지회 자문위원장이며 24년째 상산라이온스에서 봉사해온 명예회원이다.
지난 2013년에 이어 올해 제8대 대한노인회 진천군지회 자문위원장에 연임된 그는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진천군이 자문위원회 활동이 활발하고, 중앙에서 인정받아 처음으로 지난해 어버이날 보건복지부 장관 단체상까지 수상했다”고 자랑했다. 그 이유로 “2년 전 51명이었던 자문위원이 지역 사회단체장 및 지역인사들의 관심으로 현재 121명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분들 덕에 1만 여 어르신들에게 더 좋은 것을 해드릴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즐거워했다.
그는 또 말한다.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좋은 친구들과 직장상사는 물론 동료직원들의 도움에 감동을 받습니다. 아침마다 출근이 설레고 동료들에게서 힘을 받습니다. 40여 년 동안 직장생활이 이렇게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내 이덕순(69) 씨의 이해와 지역주민들 덕분입니다. 바람이라면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도움 받은 군민들께 보답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011번호를 사용한다. “30년전 고객이 아직도 우체국에 있는가를 물으며 가입한 보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을 때 최고의 보람을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고객 때문에 평생 중고차를 탔고 2년 전 자녀들의 지원으로 새 차를 처음 타게 됐다는 김동묵 실장. 그의 옆 좌석에 앉을 수 있는 것은 고객을 위한 두툼한 서류가방 뿐이다.

글·사진 = 임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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