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집념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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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숙
  • 승인 2015.07.23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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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 완 전 충북도의원
도의원시절 지역 현안 이슈화로 해결책 찾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꿈

▲ 이수완 전 충북도의원이 “소상공인에 대한 대책은 많지만 소농공인에 대한 대책이 없음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 이수완 전 충북도의원이 “소상공인에 대한 대책은 많지만 소농공인에 대한 대책이 없음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수완(55) 전 충북도의원, 그는 첫 만남보다는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이 더 기대되는 인물이다. 만남의 횟수가 많아 질수록 예의를 더 차리고 만남이 길수록 할 얘기가 많고 얘기의 깊이가 있다. 악보의 크레센도 표기처럼 점점 울림이 커지는 사람, 깊은 내면에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이수완 전 충북도의원, 최근 지역에서 행보를 넓히고 있는 그를 만났다.

고아원 설립이 꿈

어린 시절 쇤 일이 몸에 뱄다는 이전 도의원은 형에게 200만 원을 빌려 결혼식을 올릴 만큼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한다. 1억 원을 벌어 고아원 세우는 것이 꿈이었고 '고아원 차리면 아이들 옷을 빨 수 있겠느냐'라는 엉뚱한 제의로 프로포즈를 대신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홍경순(53·(전)진천여성의용소방대장, (전)백화로타리회장) 씨가 화답했음은 물론이다.

이수완 전 의원은 덕산면 석장리 출신으로 옥동초, 덕산중, 진천농고를 나와 충주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했다. 중학생 시절에는 논 100마지기를 사는 것이 꿈이었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매일 밥그릇 아래 고구마가 들어있을 만큼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농사일에 매진하면서 4H 회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그가 선배의 권유로 용몽리에서 계약돼지 1000두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가 31세, 자식 돌보 듯 밤을 낮처럼 지낸 나날이었다. 그는 “가족을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회상했다.

불과 4년 만에 목표에 도달하고 고아원 자리로 사석리에 점찍어뒀던 부지를 매입코자 했지만 땅주인이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여의치 않아 꿈을 접고 대신 석장리에 농장 부지를 매입했다. “사회보장이 민간에서 관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고 기억했다.

임대농장에서 '석장농장'으로 내 농장을 갖게 된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고 지금 그의 석장농장은 3000두 규모로 성장했다. 그렇게 한창 농장이 커갈 때 쯤인 40대 초반, 그는 '일손을 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갈증을 해소하듯 충주대학교 중어중문과에 입학할 당시는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그는 내친김에 청주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까지 마쳤다.

도의원으로 지역 현안 이슈화

그에게 다시 삶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원에서 만난 고 김종률 의원의 보좌관 장선배(새정치민주연합·청주3) 충북도의원이 뜻밖의 제의를 했다. 오랜 장고 끝에 그는 지역을 위해 일할 뜻을 굳히고 민주당 후보로 도의원 도전을 현실화했다. 그렇게 그는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 진천군 제2선거구 충북도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흑백논리가 확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글쎄요'가 없다는 뜻이다.

때로는 그것이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그는 스스로가 '할 말은 반드시 하는 성격인데 불같은 급한 성질 탓에 손해를 볼 때가 있다'고 풀어냈다.

그는 최근 지역에 일어나는 많은 현안에 대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이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는 '함께 가는 것'이다. 모두가 다치지 않고 아울러가야 한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도의원 시절 이상설 독립운동 테마파크를 만들자, 또 다른 수도권 규제완화 웬말이냐, 초등학생 증가지역 학교건립 시급하다, 혁신도시의 균형있는 정주여건 조성 촉구, 외국기업 투자유치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때, 의용소방대원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등 거의 매 회기마다 5분 발언을 통해 지역의 현안을 이슈화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애썼다.

소농업인 위해 일할 것

연탄나누기 사랑의 징검다리 진천군초대지회장을 지낸 그의 꿈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다. 두 아들에게 '가불하는 인생을 살지 말라'고 조언하고 놀아도 떳떳하고 보람되게 '품위있게 놀라'고 그는 강조한다. 또 '현재를 누릴때 가장 행복하다'며 “가정에 엄마나 아빠의 자리가 있듯 모든 곳곳에는 자기의 역할을 하는 자리가 있다. 뺏고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면 그것이 바로 사회의 질서가 아니겠는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마바둑 4단의 이수완 전 의원은 말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로 반평생을 산 나는 최근 농업이 이렇게 빨리 붕괴되는 것을 보는 것이 안타깝다. 소상공인에 대한 대책은 많지만 소농업인에 대한 대책이 없는 현실도 속상하다. 먹거리를 지켜내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의 행보가 뜻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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