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농업 진흥에 평생을 바친 공복
농촌과 농업 진흥에 평생을 바친 공복
  • 이혜민
  • 승인 2016.04.29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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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동 화 진천군농업기술센터소장

학창시절부터 4-H 활동 · 농업공무원 40년 봉직
진천 사랑으로 생거진천 브랜드 확립에 큰 역할

▲ 이달을 마지막으로 퇴임하는 신동화 소장. 그는 퇴임하면서 '기억속으로'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 이달을 마지막으로 퇴임하는 신동화 소장. 그는 퇴임하면서

까맣게 탄 얼굴이 '현장형'임을 말해준다. 사람 좋은 웃음은 공무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농부의 넉넉함을 연상하게 한다. 신동화 진천군농업기술센터 소장(61)은 농촌과 농업 진흥에 평생을 바쳐온 인물이다. 지난 27일 퇴임식을 기념해 '기억속으로'란 책을 발간해 40여 년간의 공직생활 중 함께 했던 수많은 인연과 사연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책 속에서 그는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분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행복이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농촌지도사업에 헌신

신동화 소장은 충북 청원군 북이면에서 태어났다. 석성초등학교·내수중학교·청주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6년 경기도 농촌진흥원에서 농업연구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부도 별로 안 했고 졸업하면 낙농업을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께서 '고등교육을 받았으니 면서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라고 하셔서 엉겁결에 공무원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께 감사할 일이다”라며 공무원 시험 합격이 일생에 가장 기쁜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1981년 청원군 농촌지도소로 발령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농촌지도사업에 남다른 각오를 다지게 된다. “당시 낮에는 현장 지도를 다니고 밤에는 사무실에서 야간근무를 했습니다. 영농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오토바이에 책을 매달고 다니면서 공부하고 여러 선배님들에게 수시로 찾아가서 일을 배우곤 했죠”라며 그는 특히 유한근 당시 북일지소장에게 감사를 전했다.

신동화 소장은 4-H와 인연이 깊다. 학창시절 학생4-H활동부터 시작해서 군 제대 후 연구직에서 농촌지도직으로 전환해 계속 4-H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평택농촌지도소에서 일할 때 처음 4-H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당시 100만 4-H인 운동을 벌여 4-H 조직과 회원 확보에 열심이었는데 맨 처음 부락에 나가 인사하는데 말이 딱 막혀 버린 겁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매일 밤 사무실에서 연습했지요. 그때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라고 신 소장은 회고했다.

또 그는 “4-H는 회원 스스로 깨우치고 활동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장차 우리 농업을 짊어질 주역을 기르는 미래사업입니다”라며 4-H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진천 세일즈맨이 되다

2011년 진천군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부임한 그는 진천의 농업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았다. 특히 브랜드 육성과 친환경 농업 확대를 통한 진천 농산물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 또한 농업인단체의 활성화를 통해 과학영농을 보급하고 후계농업인을 양성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처음 진천으로 발령받고 진천읍내에 원룸을 얻었다. 그는 " 진천이 연고도 아니고 처가집이 진천이긴 하지만 장인·장모님도 고향 떠난 지 오래 돼서 먼 친척들만 드문드문 아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정을 가지고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진천의 문화유적지 대부분을 방문했다. “내가 이곳에 근무하고 살면서 진천을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직자와 군민 모두는 이 지역의 상품을 팔 수 있는 세일즈맨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그는 진천에서 근무하는 내내 집의 생필품과 사무실 물품을 가능한 한 진천에서 구입하도록 했다. 그야말로 지극한 진천사랑이다.

신동화 소장에게 행정이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입니다. 그래서 업무를 진행할 때도 공개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신청, 평가, 심의 등 전 과정을 공개해야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명분도 생기고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그는 생거진천 브랜드를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손꼽힌다. 품목별로 평가방법을 기술, 특성, 기능, 건강성 등에 따라 계량화하여 평가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농업기술센터 이전 숙원으로 남아

은퇴를 앞둔 신동화 소장은 결국 농업기술센터 청사 이전 문제를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겨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합니다. 부디 송기섭 군수님과 신창섭의장님을 비롯한 군의원님들께서 과학영농 실천을 위해 큰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부탁을 남겼다.

퇴임 후 신 소장은 그 동안 짬짬이 해왔던 봉사활동을 더 활발히 할 계획이다. 그는 2014년에 퇴근 후 1년 동안 여성회관에서 이미용 교육을 받아 '섬김회'라는 미용봉사단을 조직했다. 매월 1회 요양원으로 미용봉사를 다니고 있는데 은퇴 후에는 월 4회 정도는 할 계획이라고. 그 외에도 운동과 텃밭 일구기, 악기를 배우는 등 즐겁게 노후를 보내려 한다.

“그 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만난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함께 했던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퇴직 후 기대되는 그의 여정은 '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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