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찬 모 진천군청 환경위생과 주무관
강 찬 모 진천군청 환경위생과 주무관
  • 임현숙
  • 승인 2016.08.25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학과 더불어 열정의 삶 사는 공무원

한국연구재단 등재 논문 20여 편, 토지문학제 공식 초청자
육상·축구선수를 거쳐 공무원으로 대학서 현대문학 강의

▲ 강찬모 진천군청 환경위생과 주무관이 8월 뜨거운 폭염 속에서 음성 맹동면에 위치한 진천·음성 광역폐기물 종합처리시설 표지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강찬모 진천군청 환경위생과 주무관이 8월 뜨거운 폭염 속에서 음성 맹동면에 위치한 진천·음성 광역폐기물 종합처리시설 표지판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와의 대화는 유쾌했다. 그는 박경리 소설 '토지'속 최참판 댁 서희를 끄집어냈고 관촌수필 속 충청도 사투리로 박장대소했으며 김지하와 동학을 얘기했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문학 기행인가. 진천군청 환경위생과 강찬모(48) 주무관, 그는 문학을 얘기할 때는 거칠 것이 없었고, 공직자로서의 삶을 얘기할 때는 조심스러웠다. 동 시대 서로 다른 두 개의 삶을 아우르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강찬모 주무관이 궁금하다.

일 년에 2편 이상 논문 발표
강찬모 주무관은 진천군청 환경위생과 공무원이고 일주일에 세 시간 모교인 청주대 국문과에서 현대문학을 강의한다. 청주대 국어문화원 비상근 연구원이며 한국연구재단(구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된 그의 논문은 20여 편이 넘는다. 전국 전임교수들의 논문 편수를 훨씬 상회한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1년에 두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고 지난 7월에는 문학이론서 '한국현대시의 정신사'와 '한국현대소설 탐구' 두 권을 도서출판 태학사를 통해 발간해 화제가 됐다.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소속인 그는 지난 2011년 충북작가에 '구제역'이란 시로 본격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구제역이 창궐하던 당시 산림축산과에 근무했고 매몰 현장에서 동료들이 겪는 트라우마 등을 보고 느낀 점을 시로 표현해 주목받았다.

1991년, 24살에 진천군청 공무원이 됐지만 일상 속에서 내재된 문학 감성을 주체 하지 못한 그는 30세에 청주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내친김에 석사, 2006년에는 '김지하 시에 나타난 동학사상연구'로 박사학위 까지 받았다.

같은 해에 발표한 논문 '포석 조명희 시에 나타난 고아의식 소고'는 충북에서는 처음으로 한국국어교육학회에서 발행하는 새국어교육 72호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감성을 “어릴 적 아버지는 늘 주역을 공부하셨고 집에 많은 책이 있었다. 당시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지만 나 역시 고등학교 때 공부보다는 연애편지를 대필하며 데미안과 헤세를 탐독하는 축구선수였던 걸로 보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공무원, 그리고 문학박사
강찬모 주무관은 어린 시절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충남 청양 출생, 운곡초등학교 때는 도 대표 육상선수였고 청양중 시절에는 축구를 했다. 축구선수로 천안농고에 스카웃 됐지만 원하는 대학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지 못해 자존심 상한 그는 체육전공을 목표로 재수의 길로 들어섰다. 8남매의 막내로 부모님과 형제들은 그를 무조건 지원했고 그는 서울 남영동에서 2년간 부유한 재수생이었다.

그는 “당시 남영동에는 대공 분실이 위치해 있었고 20대에 최루탄이 자욱한 시대를 살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에 관심을 가졌으나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23살에 돌아가시면서 지원이 끊겨 재수를 더 이상하지 못하고 ... 공무원이 됐다”고 회상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그는 왜 그렇게 논문발표에 집중했을까. “학구열로 여기까지 왔다. 집중할 때는 스트레스로 숨이 막히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그는 “시와 소설에 대한 전공서를 냈으니 이제는 일반 대중을 위한 편한 글을 쓰고 싶다”고 토로하며 “그간의 삶은 공부와 운동 뿐이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취미는 산책과 등산이다.

동학학회서도 관심
그는 매년 10월 '토지'작가 고 박경리 선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영시, 하동군, 원주시 등 3개 시·군이 공동으로 돌아가며 개최하는 토지문학제의 충북 공식 초청자이다. 토지문학제에서도 그를 인정한 것이리라. 동학학회에서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한없이 강해 보이는 강 주무관, 그는 때로는 편견에 맞서 자신을 지켜야 했고 공직에 있으면서 문학을 탐구하면서 또 다른 시각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노장사상에서 삶은 소요(逍遙), 즉 하나의 놀음이라고 본다. 우리 스스로를 대자연의 변화 속에 맡기고 억지 없이 자연대로 살아가는 것, 일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짧은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에 복귀하는 삶...그렇게 살아가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