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수 진천장애인복지관장
한 명 수 진천장애인복지관장
  • 신지훈 기자
  • 승인 2017.01.20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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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딛고 새 삶 즐기는 인간 승리 대명사
50세에 사고로 지체장애 3급 판정
장애인들을 가족으로 남은 삶 함께 즐겨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간승리의 대명사다. 그는 루게릭병을 얻어 손발을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기관지 절개 수술로 가슴에 파이프를 꽂아 그것으로 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물리학 업적을 남겼다.

50세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지만 장애를 딛고 장애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인간 승리의 새 삶을 즐기고 있는 한명수(60) 진천장애인복지관장, 그의 인생사는 한마디로 드라마다. 한때 삶을 포기했지만 지금은 수많은 장애인들과 새로운 인생을 즐기고 있는 한명수 관장을 만났다.

기계조작을 좋아했던 평범한 청년

한명수 관장은 비교적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4남 2녀 중 다섯째로 삼수초와 진천중, 청주공고(전기과)를 졸업했다. 2013년 57세 만학으로 학점은행제 행정전문학사가 돼 사회복지 2급을 취득했다. 양축업에 종사했던 부모님은 기계를 좋아하는 아들의 희망을 인정해 청주공고진학을 적극 지원했다. 당시 진천에 공고가 없었고 어릴 적부터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청주로의 통학 길이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 때 '충북 기능올림픽대회'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기계 관련 회사에 취업했고 중년이 넘도록 그의 삶은 모든 것이 순탄했다.

그러나 2006년 기계작업 중 갑작스런 사고로 그의 인생은 절대 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기계 작업도중 실수로 오른 손목이 빨려 들어가면서 뼈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고 1년여에 걸친 수차례의 수술 끝에 그는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중도장애자로 새 삶 찾기까지

사고 후 그는 집에서 칩거했다. 그는 “모두가 내 의수를 보고 수군대는 것 같아 외출도 삼가고 누구와도 만나려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른손목 마디를 의수로 연결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절단된 그의 마음은 쉽게 다시 붙지 않았던 것이다.

50세에 중도장애로 중년기에 찾아 온 방황 아닌 방황은 꽤 긴 시간 동안 계속 됐고, 그의 삶도 그렇게 의미 없이 지나는 듯 했다. 그러나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마음을 연 것은 한 사회복지사였다.

한 관장은 “나의 문전박대를 이겨낸 사회복지사 덕에 이렇게 장애인복지관장까지 하고 있다”며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며 웃었다.

장애인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후 세상으로 다시 나온 그는 충북지체장애인협회 진천지회를 찾았고, 그곳에서 자신보다 더 심한 뇌병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밝게 살아가는 것을 보며 장애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그는 2010년 지체장애인협회 운영위원과 사무국장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여생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관장으로 유명

그는 매일 7시 반 경이면 장애인복지관에 출근한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일찍 출근했는데 추위에 떨며 복지관이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 장애인들을 본 이후로 이른 출근이 계속됐다”며 “직원들이 부담을 가질까봐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잠이 없다'는 말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했다. 또한 한 관장은 주말에도 장애인들이 복지관에서 즐길 수 있도록 지난해에는 365일 복지관을 개방하기도 했지만 직원들의 업무강도가 너무 높아 올해부터는 일요일은 휴관키로 결정했다.

장애인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직원들에게 장애인들의 수족이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도움을 받게 되면 나중에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때 그는 왼손만으로 셔츠의 단추를 풀지 못해 칼로 단추를 끊어낸 경험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왼손잡이가 돼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

아울러 그는 “몸이 불편하다보면 자꾸 마음이 닫히고 자신을 비하하게 된다. 신체적 장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으로 인해 얻게 되는 마음의 장애”라며 “밖으로 나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복지관의 이용객들은 모두 그의 가족이다. 그는 이용객이 늘어나면서 복지관이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더 많은 장애인들이 복지관을 방문해주길 바라고 있다.

“어느새 이용객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됐다”는 한명수 관장, 그의 소망은 더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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