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기 창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 회장
류 기 창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 회장
  • kcm
  • 승인 2017.08.18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즐거운 봉사 행복한 나눔, “인생은 즐거워”

류 기 창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 회장
류 기 창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 회장


조손 가정 아이들 보면 남 같지 않아 지나치지 못해
“나를 키운 8할은 지역, 남은 여생 지역 위해 봉사할 것"

침착하고 차분한 말투.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기분 좋은 미소.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도 자연스레 느껴지는 안정감 있는 분위기는 그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올 해 나이 65세인 그는 1952년생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의 다른 이들처럼 가난과 역동의 시간 한 가운데서 평지풍파를 겪으며 하나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리라 쉽게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그러한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그런 여유와 편안함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봉사가 즐겁고 나누는 것이 행복해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채워가고 있다는 류기창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 회장을 만났다.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활동은 정말 보람된 일

류기창씨는 지난 4월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의 회장으로 추대됐다.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은 200여명의 회원들이 월 2만원의 성금을 모아 소외되고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위로와 힘을 준다는 목적으로 결성된 봉사단체로 올 해로 창립 9주년을 맞이했다.

류 회장은 2012년부터 생거진천카네이션 클럽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친화력 있는 성격과 매사에 열정적인 모습을 회원들로부터 인정받았다.

그는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작은 선물을 전달하고 함께 나누는 말 한마디에도 어르신들께서 너무도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보람된 일이라 생각해서 부족하지만 회장의 중책을 수행하기로 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할머님과 어머님 손에서 어렵게 자랐기 때문에 홀로 사는 외로운 노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보면 꼭 자신 같아서 그냥 지나치게 되지 않는 다는 그. 그는 홀로 있는 어르신들의 마음이 헤아려진다고 한다.

가난하고 외로운 어린 시절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한다.

진천읍 상신리 안골 마을에서 1952년 태어난 그는 6.25 참전용사로 순직한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계시던 할머니는 3대 독자인 아들을 전쟁에서 잃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4대 독자인 그를 홀로 키웠다.

그의 어린시절은 가난했고 또 외로웠다. 홀로 사는 외로운 노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는 이유다.

학창시절 제법 똘똘하고 명석한 아이였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다만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진천중을 거쳐 진천농고에 진학했다.

그 후 이월면사무소 서기보를 시작으로 지난 2013년 충북도 농산사업소장으로 퇴임하기까지 그는 33년 동안 공직생활에 몸담았다.

그러는 사이 차츰 집안은 안정이 되기 시작했고 결혼해 1남 2녀를 얻고 홀로 계신 할머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신장이 늘 좋지 않았던 아내를 얼마 전 잃으면서 그는 다시 또 혼자가 됐다.

어르신 위문 공연 명MC로 활약

86세의 노모와 다시 단 둘이 남겨진 일상이 적적할 법도 하지만 그의 하루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사)임란공신충의 선양회 부회장, 경제·농정분야 진천군 정책자문위원, 진천읍 행정 동우회 회원, 향토사연구회 회원, 진천군 문화 류씨 장년회 회장, 발관리 보조강사, 이상설 선생 기념사업회 인터넷 다음 카페 운영자 등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요즘 그는 한국가요사랑연예인협회 기획국장을 역임하며 노인대학, 노인복지관 등 외로운 어르신들을 위한 위문공연 봉사에 명 MC로 활약 중이다. 우리 지역의 가수 상근아의 대표곡 '농다리사랑'를 작사한 재주꾼이기도 하다.

그는 “어렵게 태어나 자랐고 힘든 형편에서 공부한 후 지역에서 계속 공직생활을 이어나갔다”며 “결국 나를 키운 8할은 지역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앞으로 남은 여생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