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홍 식 숲속농장 대표
김 홍 식 숲속농장 대표
  • 김미나 기자
  • 승인 2017.09.07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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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우직하게 35년 동안 한우 기르는 축산인
▲ 김홍식 숲속농장 대표가 축사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 김홍식 숲속농장 대표가 축사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소 세 마리로 시작해 현재 165두 한우 농장 경영
진천군한우협회 부회장 등 지역 리더로 최선다해

오래 전, 가난했던 농촌마을에서 소는 집안의 큰 재산이었다. 소를 팔아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 소를 팔아 딸의 결혼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하나의 상징이었고 때론 외로운 시골소년의 친구였다. 그 시절 누군가에게 소 한 마리는 꿈이었다.

35년 전, 소 세 마리를 사고 가슴에 부푼 꿈을 안게 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유난히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결국 그는 소 세 마리를 시작으로 가정을 이루고 4남매를 장성시켰으며 아픈 노모를 모셨고 멋진 2층 집도 장만했다.

그 세월을 우직하게 한 길만 걸어온 사람. 지금은 165두의 소를 키우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진천읍 원덕리 김홍식(58) 숲속농장 대표를 만났다.


한우 165두의 숲속농장 운영
약 8000㎡ 대지에 2700㎡ 규모의 축사에서 한우 165두가 평화롭게 여물을 먹고 있는 숲속농장.
김홍식 숲속농장 대표는 이곳에서 번식우 100두와 육성우 30두, 송아지 20두, 비육우 15두를 사육하면서 연간 4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농장을 이만큼 성장시키기까지 김 대표는 35년 동안 1년 365일을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

그는 “하루에 두 번씩 여물을 주고 매일매일 소의 컨디션을 살펴야하는 축산업의 특성상 하루도 쉴 수가 없는 일”이라며 “그저 꾸준히 자식처럼 보듬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수한 송아지 생산을 위해 암소의 혈통관리는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급받는 정액의 유전능력을 철저히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인지 숲속농장에서 자란 한우는 우시장에 좋은 평가를 받으며 높은 가격으로 출하된다.

하지만 그는 “35년간 축산업에 종사했고 이를 통해 생활하고 있지만 자식처럼 키운 소를 출하시킬 때면 언제나 마음이 짠하다”고 눈물지었다.



아버지 여의고 진천에 보금자리 마련
강원도 원주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1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5남매를 홀로 키울 수 밖에 없게 된 어머니는 큰아버지가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진천읍 원덕리 원동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가난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절, 그는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막노동부터 탄광의 광부까지 하루하루가 치열했다.

그가 축산업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도 남다른 부지런함 때문이었다.

그는 “하우스 작물이 드물었던 예전에는 농사를 지으면 7개월은 일하고 5개월은 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축산업은 1년 내내 일할 수 있어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축산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후 그는 그동안 번 돈을 모아 소 세 마리를 샀고 현재 숲속농장 근처에 축사를 지었다.

그 동안 IMF, 구제역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특유의 뚝심으로 꿋꿋하게 버텨냈다.

그는 “파동이 있을 때마다 소를 출하하지 않으면서 사료 값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견뎌냈고 소 가격이 올랐을 때 출하하는 방식으로 이겨냈다”고 귀뜸했다.



“소 여물을 주는 오전 시간 행복해”

맨 손으로 시작해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축사를 지금처럼 자리잡게 한 것은 그의 남다른 성실함 때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는 원덕리 원동마을 이장, 진천군한우협회 부회장, 진천읍이장단협의회 부회장을 맡아 최선을 다했다.

특히 신앙심이 깊은 그는 지난 2010년부터 진천제일교회 장로를 역임하며 신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아내 오연숙(56)씨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두고 있으며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에게 농장을 물려주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축사로 돌아와 소 여물을 주는 오전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며 “앞으로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삶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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