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평면 용정리 지전(芝田)마을
초평면 용정리 지전(芝田)마을
  • 박우동 기자
  • 승인 2009.05.15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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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단결심과 봉사 정신·향우회 애향심은 지전마을의 재산과 자랑


야트막한 동산위에 자리 잡은 초평면사무소 입구 삼거리에서 증평 방향으로 200m를 지나면 우측으로 지전마을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이 봄의 전령인 개나리와 함께 마을을 찾는 길손을 반긴다.

수줍게 숨어있는 듯한 지전마을은 초입부터 이시발 신도비가 과거의 영화로움을 말해주고 5년 전 아치형 구름다리로 설계되어 준공된 지전교는 진천군내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교량으로 주위의 풍경과 조화로움을 더해 마을주민과 이곳을 찾는 외지인에게 보는 즐거움과 함께 마음의 즐거움도 함께하게 한다.

옛날 넓은 잔디밭이었다 하여 지전(芝田)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황소가 누워있는 형국에 자리잡은 명당으로 마을의 동쪽으로부터 남서쪽까지 황소가 옆으로 누워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의 능선이 봄의 따스함을 더해 농사의 풍요로움과 자연이 선사하는 포근함을 함께 주는 곳이다.

△ 화합·봉사·애향의 산실
근면과 성실로 마을 일을 책임지고 있는 윤승만 이장은 “우리 마을은 총 75가구 200명의 주민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지전회관이 속해 있는 가장 큰 마을에 44가구가 모여 살고 있고, 동쪽으로 성공회로 부터 증평방향으로 약 1.3Km 지점의 성지골까지 국도 좌우편으로 31가구가 살고 있는 넓은 마을로 분포돼 있습니다.

주민들은 직업군도 다양해 지역 최고의 품질과 밥맛을 자랑하는 벼농사와 밭농사로는 마늘, 배추, 오이 등을 주로 경작하고 있고 도로 주변으로는 식당, 주유소, 낚시매점 등 다양한 자영업과 주위 공단지역 등에 근무하는 직장인도 함께하는 마을입니다. 단결과 협동심이 강한 우리 마을은 아늑한 마을 풍경만큼이나 주민들도 화목함과 아름다운 마음으로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마을입니다”라며 초평저수지 상류의 맑은 초평천이 마을 앞에 있어 외지인이 항상 찾아와 낚시와 물놀이를 즐기는 곳으로 동네청결을 위해 청소와 트랙터로 재설작업까지 도맡아 하는 새마을지도자(이석주)와 동네 학생들의 등·하교를 차량으로 봉사하는 청년회장(유무종)과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며 마을 발전과 효도관광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재경지전 향우회(회장 이재범)에 대해 고마움을 아끼지 않았다.

△ 살고 싶고, 찾고 싶은 자연환경
마을 노인회장 권상수 어르신은 “우리 마을은 예전부터 풍수 지리적으로 와우형의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마을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명당으로 자식이 번창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옛날부터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조선 효종 때 세워진 이시발 신도비가 지전마을의 풍요와 역사를 말해주는 남들이 살고 싶고, 찾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또 “초평저수지 상류를 끼고 있어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개울물을 먹고 생활할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토종 물고기가 많아 여름이면 많은 인파가 물가를 찾아오는 곳으로 우리 마을이 자랑스럽습니다”라며 예전에 뱀장어와 민물 게가 많이 서식한 궁개들,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조재, 증평으로 가는 동잠, 대지랑 고개, 개울가에 새우가 서식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셨다.

△ 숙원 사업인 마을회관 신축·마을길 확장
지전마을은 '78년도에 지은 마을회관이 좁고 노후되어 회관 부지를 확보해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신축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한국농촌공사로 부터 땅을 임대해 논과 밭작물을 경작하고 있어 농지 정리와 농촌길 확장이 필요한 실정임에도 잘 이뤄지지 않아 불편함이 많고 특히 주민들은 마을진입로가 손상되어 재공사를 요청해도 시효기간으로 인해 공사가 이뤄지지 않아 불편함이 많다고 한다.

한편 이석주 새마을지도자는 “낚시인과 행락객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가고 심지어는 가정 쓰레기를 싣고와 버리는 경우도 있다”며 마을에서 청소를 하고 있지만 행정기관에서도 힘써주길 당부했다.

지전마을은 매년 1월 첫째 주에 대동계를 통해 지난해의 결산과 올해 동네의 각종 당면사항을 논의하고 특히 효 실천을 위한 경로잔치를 청년회에서 해마다 하고 있으며 4월 초에는 효도관광을 통해 주민단합과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개울가 정자에서 민물매운탕을 함께하며 정겨운 담소를 나누는 마을주민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을 뒤돌아보게 하는 지전마을의 아름다움에 마음 한편으로 부러움이 가득했다.


/우/리/동/네/이/장/님/

윤승만 이장
윤승만 이장







주민건강을 위한
복지시설 확충에
최선을 다할터…


평소 마을의 단합과 발전을 위해 협조해 주시는 마을주민과 재경 지전 향우회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향우회도 날로 발전해 마을을 빛내주길 바랍니다.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의 복지시설 설치와 함께 마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으며 마을주민 모두가 아름다운 지전마을 가꾸기에 동참해 주셔서 살기 좋은 마을로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권상수 노인회장
권상수 노인회장




마을 노인회 회원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주민께 감사


마을 노인회 회원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이장, 새마을지도자, 청년회 회원에게 감사하며 올해도 청년회와 향우회의 도움으로 좋은 곳을 관광하고 푸짐한 음식과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힘써준 주민여러분께 회원들을 대신해 감사를 전합니다.
마을의 숙원사업인 경로당이 지어져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길 바라며 이웃과 함께 지금처럼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석주 새마을지도자
이석주 새마을지도자





환경과 자연 보호를
통해 깨끗하고 살기
좋은 마을 만들터…

먼저 동네주민 여러분과 협조해 지전마을이 깨끗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노력하겠으며 외지에서 오는 행락객들이 환경을 지키고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환경 지킴이로 함께 해주길 부탁드리며 특히 마을에 젊은이가 많이 거주하여 떠나는 농촌이 아니라 찾아와 함께 사는 농촌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변상식 부녀회장
변상식 부녀회장








주민의 단합된
모습은 가장 큰 자랑

동네 애·경사와 대동계·대보름행사와 경로잔치에 부녀회원 여러분께서 열심히 도와주셔서 감사드리며 최근 가정일로 항상 함께 하지 못해 주민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장님과 함께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전회원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무종 청년회장
유무종 청년회장





경로사상과 효 실천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청년으로…

청년회원 60명 중 거의가 객지에 나가있고 동네에 사는 분은 몇 명밖에 없어 어려움도 있지만 외지 회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미력하나마 해마다 4월이면 경로잔치를 해오고 있는데 미진한 점을 보완하여 좀 더 활력과 내실이 있는 행사로 발전시켜 나가겠으며 경로사상을 최우선으로 하여 이장,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과 협심하여 마을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회원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기성 노인회총무
김기성 노인회총무






노인회는 동네일을
해결해나가는 창구
역할 담당해야…

우리 노인회는 노인회가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회장님을 중심으로 마을의 발전과 여러 동네일을 솔선해 해결해나가는 창구의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 부분의 책임자와 주민이 자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며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손을 잡고 서로 어울려 살맛나는 동네로 더욱 발전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합시다.

-우리마을 유적지-

이시발 신도비





▶ 지정번호 : 충북유형문화재 제142호
▶ 지정연도 : 1984년 12월 31일
▶ 위 치 :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192-11
▶ 시 대 : 조선시대


▶ 유적현황 :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이다. 이시발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이다. 1569년(선조 2) 충청북도 오창면 오근리(지금의 장대리)에서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자의 호에 똑같이 오(梧)자가 들어 있는 것은 그들이 살던 오근리(梧根里)와의 연고 때문이다. 이시발이 죽은 후 그의 부친의 묘(墓)를 초평면 용정리로 이장하였는데, 자손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그 일족에게 초평 이씨(草坪李氏)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다.

이시발은 1589년(선조 22)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박춘무(朴春茂)와 함께 활약하며 많은 공을 세웠으며, 1596년(선조 29) 10월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군사시설의 설치와 군량의 확보 등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장락원정(掌樂院政)·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냈고,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는 북변(北邊)을 방어하기 위하여 포대와 성곽을 보수하였다.

이괄(李适)의 난 때는 체찰부사(體察副使)로서 공을 세웠고, 남한산성의 역사(役事)를 감독하던 중에 사망하였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충익(忠翼)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 신도비는 선조·광해군·인조의 3대에 걸쳐 왕을 잘 섬기면서 여진인(女眞人)을 무마하여 백성의 생활에 안정을 주고 지방민(地方民)을 평온하게 하였던 공(功)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1658년(효종 9)에 건립된 이 비의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지었으며, 서(書)는 송준길(宋浚吉)이, 전(篆)은 이정영(李正英)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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