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면 송림리 송현1구 김진군 이장
이월면 송림리 송현1구 김진군 이장
  • 강성진 기자
  • 승인 2009.07.16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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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일=나의 일’이라는 공식으로 지역주민과 행정의 가교 역할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역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요즘, 75가구 189명이 사는 이월면 송림리 송현 1구 이장직을 9년간 수행하면서 마을 주민의 건의사항에 대해 항상 자기일처럼 앞장서면서 면행정에도 지역주민과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이월면 송림리에서 시장가스를 경영하고 있는 김진군씨(50). 꽃이 향기로 사람을 즐겁게 하듯 사람도 향기를 풍겨야 한다.

상대방이 나를 만나서 즐거웠다는 기억이 남도록 하는 것은 생각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라 종이 한 장 차이만큼 더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좀 무뚝뚝해 보이는 그의 얼굴은 자세히 보면 웃음이 먼저 있다.

“나의 힘은 비록 미약하지만 쇠락되어가는 고향 이월을 살리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그는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칠 수 있는 적임자는 김진군뿐이다'라는 말보다 솔선해서 내 고향 이월을 일으켜 세우는데 한알의 밀알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바램처럼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묻힐 고향 이월 발전을 위한 김진군 이장의 열정과 패기를 앞세워 고향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는 뜻을 품은 그의 순애보를 들어본다.

1960년 이월면 송림리에서 태어난 그는 이월초등학교(52회), 이월중학교(2회), 청주기계공고(28회)를 졸업하고 1979년 청주의 유리회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 했던가? 요즘 사람들 젊어서는 고향을 떠나지 못해 안달이 났다지만 그는 고향이 그리워 1985년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이월로의 귀향을 결심한다.

이때 직장에서 소개로 만난 지금의 아내 배태근(50)씨와 이월복지회관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이후 1993년부터 축사를 짓는 공업사를 경영하면서 자영업에 뛰어든 그는 의용소방대(1993~2007), 이월축구협회회장 2회(1997~1999, 2002~2005), 이월중학교 동창회장(2000~2007), 이월자율방범대장 2회(2001~2003, 2006~200
7), 송현 1구 이장(2001~), 이월면 이장협의회 사무국장(2007~)등 여러단체를 두루 거치면서 청소년지도위원(진천경찰서장 표창), 각종 모범군민 군수표창, 이월방범대, 동창회 감사패등 10여차례 이상 수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항상 긍정적이면서 원만한 성격은 결코 숫자로 세는 나이를 먹지 않았음을 김진군 이장을 대면하는 모든 이들은 느낀다.

그것은 성격에서 오는 온유함도 있겠지만 타인과의 타협에 있어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 원만한 성품에서 우러난 여유로움이 아닐까?

그에게는 내 일, 남의 일이 없다. 뭐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를 찾는다. 누구라도 부모와 형제처럼 그를 불러내 도움을 청했다. 경찰서 일, 보일러 고치는 일, 싸움판까지 그가 필요했다.

특히 이월정화청년회(자율방범대의 모태가 됨) 시절부터 낮엔 일하고 밤엔 새벽 3시가 넘는 시간까지 순찰활동을 펼쳐오면서 지역 범죄 예방에도 기여했다.

그가 방범대장을 맡으며 매일 방범대 사무실로 출근하는 남편을 보면 지청구가 절로 나왔을텐데 아내는 남편의 뜻을 알았을까 말없이 뒤에서 응원해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지면을 빌어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참으로 준비된 사람이다. 주민과 같이 기쁨을 나누며 어려울 때 같이 견뎌낸 참 이월 사람이다. 그가 발로 뛰어 다닌 동네는 피땀이 베인 곳이다.
작은 방범대원으로부터 이월이장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올해 1월 군수 연두방문, 3월 화풍이월 한마음걷기대회, 5월에 있었던 이월면 경로잔치 등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참여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써 왔다.

방범시절 에피소드를 묻자 “10여년전 광혜원 갑을아파트에서 문화마을로 순찰을 돌고 있을 때 일이다. 미잠교 코너길에서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하길래 미심쩍어 가보았더니 오토바이사고로 사람이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워낙 급박한 상황인지라 진천의 성모병원으로 재빨리 후송을 했고 사고자는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찾아와 고맙다고 했을때 보수없는 방범대일을 시작한 것에 큰 보람을 느꼈던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2007년 그와 오랜시간 생사고락를 함께 한 방범대와 소방대 등 화려했던 이력들을 과감히 접고 송현1구 마을 이장일과 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 일에 전념하고 있다.

아직도 그의 존재를 아쉬워 하는 후배들로부터 함께 하자는 청을 받고 있지만 “지역에서 어떤 단체 어떤 봉사일을 하든 선후배간 우애를 돈독히 다져 지역발전에 힘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돌려 보내고 있다.

또한 산행을 좋아하는 김진군 이장 부부는 화풍이월 산악회와 민통산악회에서 등산활동도 열심이다.

설악산, 지리산 등 10시간이 넘는 등산코스를 단 한번의 포기없이 정상을 등반한 그는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2남 1녀(용배, 종배, 가연)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진군 이장은 참으로 예사로운 사람이 아님을 다시 깨달으며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다.

그의 모범적인 삶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봤으면 한다.

그가 우리 진천의 우뚝 선 기둥으로 버티어 주는 한 내 고향 진천의 내일은 분명 희망으로 그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리라.

김진군 이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가볍게 잡은 손 끝으로 동향인의 끈끈함이 정으로 느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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