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섭 한국수출입은행부행장
남기섭 한국수출입은행부행장
  • 정선옥
  • 승인 2009.11.16 1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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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해서 만든 정책 발휘될 때 가장 큰 보람


Q 고향에는 자주 내려오십니까?

A 그리 자주 내려오지 못합니다. 설과 추석 명절 때, 부모님 기일, 집안 혼사나 상사 시 등 찾고 있습니다. 고향 친구들에게 욕 많이 먹고 있지요. 자주 오지도 않고, 어쩌다 와서도 얼굴도 안비치고 도망치듯 떠난다고 말입니다.

Q 고향에 아직 남아있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이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부모님은 안 계시고 형님 두 분과 누님들, 그리고 사촌 형님과 누님들이 고향에 계십니다. 친한 친구 이름을 대면 나머지 친구들이 섭섭할 것 같아 거명을 하지 않겠습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꽤 있습니다.

Q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고향을 떠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A 예. 진천에서 상산초등학교(56회)와 진천중학교(20회)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Q 그럼 고향에 대한 추억은 많이 없으시겠네요. 그래도 진천에서 보낸 유년시절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으신가요?
A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데 추억이 없을 수 있나요. 제가 살던 동네가 읍에서 2㎞ 쯤 떨어진 곳이라서, 등하교에 얽힌 추억이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눈 쌓인 산길을 소나무 가지를 썰매 삼아 신나게 타던 일, 하교 길에 밀띠기나 참외서리 하던 일 등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에는 이맘 때 쯤 하교 길 중간에 길 옆 묘지에 누워 맑디맑은 하늘을 보며 영어단어도 외우고 이런 저런 미래에 대한 상상도 하곤 했던 생각도 나는군요.

Q 고향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선물인가 봅니다. 어렸을 때는 어떤 꿈을 갖고 계셨나요?
A 제가 자리 욕심이 좀 있나 봅니다. 중학교 시절 사회시간에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여쭤 보셨을 때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게 제 꿈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그냥 그 땐 그게 좋아 보였거든요.
제 기억에 그 때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가 분단국이라서 그 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금방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우리와 가까운 음성군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왔지 않습니까? 아마 그 때 선생님께서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면, 외교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긍정적인 답변과 격려를 해 주셨더라면 오늘 날 훌륭한 외교관이 되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래서 교육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담입니다만 자녀들이 모두 명문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교육방법이 있으신가요?
A 이런 질문 받을 때 제일 곤혹스럽습니다. 사실, 뭐 유별난 노력을 한 건 없습니다. 다만, 저로서는 애들이 원하는 것이 해롭지 않은 것이면 최대한 들어줬다는 것과 모든 것을 스스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애들이 어릴 때 호기심을 갖도록 여러 기회를 준 것도 효과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저도 아이들 키우는 입장이니 앞서 말씀해 주신 것들이 자녀 교육에 가장 기본이라는 것은 알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 아니겠습니까? 실례지만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
A 아내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딸(26), 그리고 지금 군 복무 중인 아들(22)이 있습니다.

Q 우선 현재 근무하고 계시는 한국수출입은행에 대해 지역민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일반 은행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A 한국수출입은행은 정부가 세운 국책은행으로, 설립된 지 33년이 넘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기업이 온갖 제품을 수출하거나 중요한 물자를 수입할 때, 그리고 외국에 공장을 세워 사업을 할 때, 석유나 광물 등을 외국에서 개발할 때 등등, 우리 기업의 모든 대외거래활동에 대해 금융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정부를 대신해서 우리나라보다 좀 못 사는 외국에 원조자금을 주는 일과 이산가족 상봉이나 개성공단 진출 등 남북간 교류협력에 필요한 자금을 집행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Q 사업범위가 광범위하군요. 그럼 대학을 졸업하신 이후 지금까지 한국수출입은행에서만 근무를 하신 건가요?
A 그렇습니다. 지난 1982년 8월에 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한국수출입은행에 들어와 27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간 중에 여러 부서를 거쳤고, 2년간의 미국 유학과 파리 근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Q 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십니까?
A 8시 쯤 은행에 도착합니다. 본격 근무 시작 전에 경제신문을 읽고 행 내 인트라넷에 올라 있는 여러 정보를 봅니다. 근무시간이 되면 결재 또는 보고를 받거나 내부 또는 외부의 회의에 참석합니다. 시간이 좀 나면 업무관련 자료나 책을 봅니다.

Q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성공하신 분들의 경우는 아침을 시작하는 자세가 남들과 다르더군요. 상당히 일찍 출근하시는 편이네요. 남 행장께서는 일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이루셨지만 학교도 서울대라는 국내 최고의 학교를 졸업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역의 후배들에게 전해주고픈 말씀 없으십니까?
A 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후반은 아시다시피 민주화를 위한 열풍이 거세던 시절이었습니다. 민주와 정의를 위해 내 자신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고향에서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얌전히 공부만 할 것인가를 놓고 많이 갈등하고 고뇌하던 기억이 납니다.

Q 지역 후배들을 위해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지역 후배들에게 굳이 조언을 하나 한다면, 자신감을 잃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진학한 고등학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둘 째 가라면 화를 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충청도 작은 읍에서올라온 저로서는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자라서 모두 천재같이 보이는 급우들에게 엄청 주눅 들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러나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그들과 비슷하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사모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지요? 연애결혼 하신건가요? 연애시절 이야기와 결혼 후 가족관, 자녀에게 바라는 사항을 말씀해 주세요.
A 아내와는 중학교 동기의 소개로 만나 1년 조금 넘게 연애하다 결혼했습니다.
한 세번째 데이트할 때인가, 제가 친구들 모임에 같이 가서 불쑥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려고 하는 데 투표로 결정하자'고 했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좀 저돌적이었다고 생각되지요?

Q 사모님께서도 상당히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A 현재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고, 또한 소비자 활동 관련 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좀 덜 활동해도 될 듯싶은데, 여전히 일이 좋아 일을 찾아 한다고 해야 할까요? 조금씩 정리하는 게 어떠냐고 권하고 싶습니다.

Q 특별한 좌우명이나 생활신조가 있으신가요?
A 제 가훈은 '정직과 성실'입니다. 너무 평범하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늘 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 부와 권력과 명예가 의미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임을 알아주고자 함이죠.

Q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성격은 어떻습니까?
A 저는 좀 성격이 급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나이 먹어 가면서 많이 순해지려 노력하지만, 천성이라 그런지 쉽지는 않네요. 세상의 모든 일이 결국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려와 양보의 덕목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평소 즐겨하시는 운동이 있으신가요?
A 축구를 좋아 하지만 요즘은 중단한 상태고, 주말에 가끔 직장동료들과 골프를 하며 친목을 도모하고 필요한 정보를 교환합니다.

Q 한국수출입은행에 근무하면서 가장 큰 보람이라면 어떤 부분일까요?
A 저희 은행이 국책은행이다 보니,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며칠 또는 몇 달씩 고생해서 만들어 낸 정책이나 조치가 효력을 발휘해 우리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지요. 만약 남부행장께서 지금까지 지난 세월 중 돌아가고픈 시절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신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A 1993년부터 2년간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 시절에는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도 없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많았어요. 가족과 함께 여행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Q 고향인 진천군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A 가장 아픈 질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고향 발전을 위해 이렇다할만한 일을 한 게 없습니다.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을 텐데요. 다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생각해서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기타 부행장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부끄럽습니다. 쓸 데 없이 자랑한 꼴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저에게 이렇게 큰 배려를 해주신 이상훈 발행인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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