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진천군궁도협회장
정성호 진천군궁도협회장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0.03.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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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대표기자의 취중Talk! 스물일곱번째 손님-2


진천군이 배출한 기획·행정의 達人
1951년 이월면 중산리에서 가난한 농군의 4남 4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1977년 덕산면을 시작으로 행정계 14년, 지역경제과장, 문화체육과장, 광혜원면장, 재무과장을 거쳐 경제과장으로 33년의 공직 생활을 명예롭게 마치고 지난 2월 26일 퇴임한 정성호 前경제과장을 취중토크 현장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기전 중후하고 딱딱한 공무원의 이미지를 연상했으나 막상 대화를 거듭 할수록 점점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나 연구원의 모습이 떠올려져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그는 현직의 젊은 실무자처럼 지역사랑의 열정이 불타고 있었다.

Q 퇴임식(2.26)후 2주정도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A 퇴임과 동시에 오는 6월을 준비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바쁘다보니 퇴임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고요. 며칠전에 일이 있어 군청에 갔었는데 이상하게도 현직으로 근무할 때와 별반 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제가 33년 공직생활 중 27년을 군청 건물에서 근무했는데 아마 오랜 세월 근무했던 곳이라 너무 정이 들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Q 평소 주량은요? 추억이 있으면 한가지 부탁드립니다.
A 술을 전혀 하지를 못합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한잔으로 입술만 적시면서 끝내는 정도지요. 저의 부친도 많이는 아니지만 즐기신 편이셨고, 동생들도 조금씩은 하는데 저만 술을 못하고 있습니다. 옛날 할머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로는 제가 5~6세쯤 되던 때 콩마당질을 했는데 집에서 밀주를 담아서 어른들이 드시는 것을 보고 하도 먹겠다고 떼를 써서 한잔 줬다고 합니다. 얼굴이 빨개져서 콩을 밟고 다니며 이리저리 넘어지고는 그 뒤로 술 달라는 것을 못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도 그때 술에 너무 혼이 난 모양입니다.

Q 유년시절의 추억담도 좀 들려주시지요.
A 이월면 중산리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시는 부모님의 4남 4녀중 맏이로 태어나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할 만큼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했습니다. 그 당시 겨울만 되면 땔감을 구하기 위해 명암리 앞산(서산)에 지게지고 푹푹 빠지는 눈쌓인 산속을 헤매다녔던 기억. 국민학교 졸업식날 학생대표로 우등상을 받았는데 깁고 또 기워서 신던 양말에 빵꾸가 난 줄도 모르고 시상대에 올라갔다가 그 모습을 보시고는 “대표로 상받는 놈이 양말이 그게 뭐냐?” 하시면서 머리를 만져주시던 선생님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Q 33년 공직 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 있다면요
A 아무래도 광혜원 면장시절이 아닐까 합니다. 광혜원면은 인구의 75%가 면소재지에서 주로 살고 있고, 농업인구는 25%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타 면과 똑같이 농촌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면사무소 앞마당에서 초등학생 3명이 인라인을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비록 면지역이지만 초등학생이 1000명이 넘는 광혜원에 저 아이들이 안전하게 맘껏 뛰어놀 공간이 하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인라인 구장을 만들고자 군에 건의 했습니다. 도시계획도로를 확충해 도시기반을 다지고 읍승격을 위한 정주여건을 마련하는데 전념했어요. 그것이 음성 대소면과 경기도 안성지역과 인접한 광혜원면이 가야할 방향이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광혜원 버스터미널도 이용객은 읍수준으로 많은데 반해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어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수십년간 방치되고 있어 터미널 인도설치가 시급했지요. 광혜원 면민 모두가 오랫동안 숙원했던 일이고 지역에 꼭 필요한 사업들이란 것에 공감을 하고 유군수님의 적극적인 배려와 지원으로 무사히 사업들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짧은 임기로 광혜원 면장직을 마칠때는 아쉬움이 컸는지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Q 사모님과는 연애결혼 하신건가요? 연애담좀 들려주시죠.
A 아내와는 바로 이웃동네(동성리 성평부락)인데도 중매로 만났습니다. 진천터미널 다방에서 선을 봤는데 서로 마음에 들었는지 점심식사를 하러 갔지요. 일요일이라 그랬는지 식당문을 연 곳이 없어 진천읍내를 한바퀴 돌고 돌아 결국 안동장에서 자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볼때 자장면은 먹지 않는게 상식이었는데도 식사 할 곳이 없더라고요(웃음) 그후로도 아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제가 토요일마다 상경하며 만나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가족보다는 공직을 우선하는 저의 공직관 때문에 많은 희생과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첫딸을 낳은 뒤 다음해에 아들, 딸 쌍둥이를 낳아 졸지에 아이가 세명이 됐는데, 세탁기 구입은 엄두도 못내던 때라 겨울에도 하루에 몇 번씩은 찬물에 기저귀를 빨아야 했던 아내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며 제가 공직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세월을 말없이 내조해 준데 대해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Q 오랫동안 궁도를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진천군궁도협회의 사두가 되셨는데 소개좀 해주시죠.
A 진천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장군 탄생지로 장군이 유년시절 말타고 활쏘며 검술을 연마하는 등 심신을 단련했던 유적과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유서깊은 고장입니다. 1997년 궁도에 입문해 일요일이면 화랑정에서 궁도를 즐기고 있습니다. 활쏘기는 크게 운동이 안될 것 같아 보여도 정신집중과 전신근육을 사용하는 '종합운동'입니다. 한발 한발에 정신을 모으지 않으면 쏠 수가 없죠. 하체가 잘 받쳐주지 않으면 과녁을 맞히지도 못할 뿐 아니라 화살이 나아가지도 않아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이 이뤄지면서 심신이 건강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진천에 화랑정까진 아니더라도 진천군민들이 누구나 와서 활쏘기를 즐길 수 있는 간이국궁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Q 지난해 진천군청 공무원들이 '야시장설치저지운동'을 벌이며 지역상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요, 당시 이야기좀 해 주시죠.
A 9월달이었는데 야시장측에서 진천읍 하상주차장에 2주정도 야시장을 열겠다는 사업계획서를 군에 제출했지만 이를 불허했지요. 그러자 야시장측이 막무가내로 하상주차장에 천막을 치려고 했습니다. 엄연한 불법행위였고 지역상인들도 다들 불황으로 울상인데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원들과 군청대형버스까지 동원해 주차장을 사수했죠. 지역상권을 지켜내기 위한 진천군음식업지부, 해병전우회, 지역상인들의 단합된 힘에 사실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공무원도 지역주민을 위해 존재하므로 응당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지요.

Q 이월SKC산업단지, 문백 이월전기전자농공단지 등 기업유치와 기업체협의회, 진천사랑상품권 운영 등을 창안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했는데 前 경제과장으로써 지역경제활성화방안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사통팔달의 교통망과 농업군으로 훌륭한 여건을 가진 진천군은 농공상업이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는 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우선 지자체에서는 지역상권의 위축으로 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지원정책을 마련, 관내 기업체의 애로사항 해결,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자금지원 등을 통해 기업하고 살기좋은 진천군 만들기에 행정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따라서 공무원은 언제나 현장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뛰어야 하고, 우리 군민 모두가 애향심을 가지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잘사는 일에 함께 동참하는 사회적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Q 현재 진천은 기업체협의회와 상공회의소가 분리되어 있는데 통합이나 개선점에 대해 갖고 계신 생각은요.
A 기업체협의회는 제가 지역경제 계장 시절 기업인 상호간의 친목도모와 정보교환 및 지역경제 동참 등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영입코자 군 시책으로 조직, 육성해온 단체이기 때문에 애착과 정이 많이 들어있는게 사실입니다. 상공회의소가 설립되면서 군 기업체협의회와의 일부 갈등으로 군 기업체협의회는 폐지하고 읍·면 기업체협의회는 자생조직 형태로 존속 운영되고 있는데 각 읍·면마다 지역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공회의소와 기업체협의회의 통합은 현시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나, 회비문제나 업무 등이 상호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통합을 검토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지방자치란 무엇입니까?
A 문자 그대로 '지방자치'는 지방행정을 지방에서 스스로 주민들과 협의하여 결정하며 중앙의 개입소지를 최소화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흔히들 반쪽짜리 지방자치라고 하죠. 주민투표에 의해 단체장과 의원을 선출하고는 있지만 재정적인 측면에서 중앙의 지원이 없이는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일은 불가능 한 것이 현실입니다. 재정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세의 과감한 지방세 전환 등 전향적인 조치가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민들의 자치의식 함양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1998년쯤 일본에서 고바야시 교수의 '지방자치'에 관련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교수는 “지방자치의 성공요건은 그 지역 공무원이 지역에 대해 얼마나 큰 열정과 애착을 가지고 일하느냐가 관건이다”며 “지방자치는 가슴으로 해야한다”라는 말은 제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죠. 우리지역 공무원들이 공무를 가슴으로 행할때 지방자치실현은 좀 더 앞당겨질 거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Q 퇴임하시면서 공직의 후배들에게 2가지를 당부하셨다던데요. 무엇이었습니까?
A 네. 너무 길면 잔소리가 될 것 같아서 공·사를 구분해서 한가지씩 후배들에게 부탁 말씀을 드렸는데요, 먼저 사적으로는 인생선배로서 경험한 일중 제가 제일 가슴 아팠던 일로 “부모님께 잘해 드려라”는 것입니다. 흔히 공직에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과 대화한번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부모님이 언제까지라도 건강하실 것이라 믿었어요. 제 경우에는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이 2년사이에 돌아가시게 되니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마음적으로나마 부모님께 의지하던 그 보이지 않은 힘이 그렇게 클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는 공적인 사항으로 공무원 선배로서 우리 진천군이 타지역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무원들이 지역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부탁 드렸습니다. 후배님들이 단순히 공직을 그냥 직장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 진천이 타시군에 앞서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타지역이 고향인 공직자도 꽤 있습니다만, 진천군에서 근무하는 커다란 인연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7만 군민을 부모형제처럼 생각하고 진천지역을 내 집안처럼 가꾸어 나간다면 생거진천은 저절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부탁 드렸습니다.

Q 이번 지방선거 출사표에 대해 주변의 반응은 어떻든가요?
A 사실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고, 평소 내성적이고 차분한 제 성격에 잘 할 수 있겠냐는 질문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공무원출신이 정치에 나오면 그동안 공무원했으면 됐지 뭘 더 욕심내느냐는 여론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치도 뭘 좀 아는 사람이 해야 되지 않느냐는 여론이 더욱 강한 것이 사실입니다. 지역발전을 향한 제 열정이 33년 공직으로 채우기엔 부족함이 있음을 알기에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Q 앞으로 두 달여 남은 지방선거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A 저는 정치와 선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고 마음만 바쁜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제가 공직경험을 바탕으로 진천군의 발전과 군민들을 위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열정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군민 여러분의 선택을 받기 위해 주어진 기간동안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각오입니다.

Q 마지막으로 진천군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그 동안의 공직경험을 바탕으로 군민여러분의 대변자 역할에 충실함은 물론 생거진천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끌기 위해서 군의원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군민여러분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저의 모든 열과 성을 다바쳐 기대에 보답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낌없은 성원을 부탁합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피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광혜원면장 재직시절 그는 광혜원면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판단될 땐 거침없이 광혜원면 차별해소를 외쳤다. 공직사회에선 '싸움닭'으로 통했을지는 몰라도, 지역주민들에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진정한 공복(公僕)이었다. 현직 의원 한 명 없는 광혜원에서 면민들이 진정 원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알고 일해온 그를 기억하는 이는 의외로 많다.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오랫동안 직장에 매어 개인이 하지 못한 일 즉, 건강과 휴식을 위해 여행을 다니며 노후를 즐기는 일을 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하지만 정성호 전 경제과장을 만나면서 '아직도 진행형이구나'하는 생각으로 지역을 위해 더 쓰고 싶다 하니 고맙기까지 했다.

그의 열정적인 연구열과 시간을 금처럼 아끼는 확고한 철학이라면 능히 꿈을 이루는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면서 의미 있는 취중토크를 마쳤다.

30여년 공직생활을 통해 달구어진 행정노하우와 다부진 자신감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 유연함, 참으로 예사로운 사람이 아님을 다시 깨달으며 타고난 리더십과 함께 지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힘껏 발휘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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