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읍 지암리 3구 가술마을
진천읍 지암리 3구 가술마을
  • 김희규
  • 승인 2010.05.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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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좋아, 사람이 좋아, 멀리 떠나지 못하고 정착한 따뜻한 마을


갑작스런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풍성함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 피어오르는 새싹을 시샘이라도 하듯이 진달래꽃과 개나리꽃이 앞다투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는 봄. 아담하고 정겨운 지암리 3구 가술마을을 찾았다.

가술마을은 진천읍에서 남서쪽으로 약 6.3k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주방면 21번 국도를 따라 가다 사석삼거리에서 천안방면으로 500미터쯤 가다보면 아트밸리 C.C 간판이 있다. 그 간판을 뒤로 하고 조금만 가다보면 가술마을 표지석이 눈에 띈다. 표지석을 따라 50여미터 올라가면 반듯한 양옥건물이 오목조목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 오늘 소개할 가술마을이다. 이곳 가술마을은 초입부터가 남다르다. 여느 시골마을 같지 않게 농지정리가 잘 되어 있는 모습과 반듯하게 지어진 양옥건물이 무언가 사연이 있는 마을인 듯 보였다.

마을회관 입구에서 시원시원한 목소리의 이장님을 만나뵙고 “이장님! 햇살이 너무 좋으니 단체사진 한장만 찍을께요”라고 전하자,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이 우루루 나오시는 것을 보고 바쁜 농번기에도 불구하고 많이 모여 계신 모습에 단편적이지만, 마을주민들의 화합을 엿볼 수 있었다. 눈부신 햇살을 뒤로하고 회관 안으로 들어가 주민들의 정겨운 입담을 들어보았다.

■ 공동체 의식속에서 함께 생활하고 항상 단합된 모습으로
지암리는 지장(芝長)과 가암(加岩)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본래는 서암면 지역이었으나 지암리라는 이름으로 명하고는 군중면에 편입된 마을이라 한다.
특히 오늘 찾아온 이곳 지암리 3구 가술마을은 골프장 건설로 인해 새로이 이주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주민들의 말을 듣고서야,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골프장 건설로 인해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조금의 마찰은 있지만 주민들의 타협과 슬기로 비교적 잘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마을이 현재 모습으로 자리잡기 전, 여러가지 연유로 아쉬운 고향을 떠나신 분들도 몇 가구 계시지만, 그래도 살던 곳이 좋아 이웃주민이 좋아 이곳 가술마을에서 정착한 분들이 무려 80여분이나 된다고 한다. 이곳 가술마을은 작은 덤바위와 큰 덤바위 마을이 포함되어 불려지는 이름이다. 현재 작은 덤바위에는 6가구, 큰 덤바위에는 8가구, 그리고 가술마을에 18가구 총 32가구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주로 논농사를 지으신다고 한다.
마을에 연로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큰 농사와 특용작물을 재배하시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이 조그마한 텃밭을 일구시며 생활하신다고 한다. 농가소득면에서는 그리 특별하진 않지만, 마을분들은 언제나 공동체 의식속에서 함께 생활하고 항상 단합된 모습으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 노력중이라고 한결같이 전한다. 특히 상조회를 결성하여 상조회 계원 및 주민들이 모여 정겹게 윷놀이도 하시고, 작년과 올해에는 효도관광도 즐겁게 다녀왔다고 한다. 이장님은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매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이 곳 가술마을은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고, 농기계 및 농기구 보관창고가 별도로 준비되어 있고, 근처 연곡저수지를 통한 농수로 사업으로 농수공급이 원활해 농사를 짓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특히 해마다 10월에는 전주이씨 문중의 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제를 통해 조상의 대한 업적을 기리는 것과 동시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종친들이 다같이 모여 시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제는 전주이씨 의안대군 학천군파를 기리는 제로서, 이 마을 노인회장 고조부는 도정공 벼슬을 지내기도 했으며, 노인회장은 의안대군 학천군파 19대 자손이기도 하다.
의안대군은 고려 공민왕 때 대장군으로서 왜적과 홍건적을 물리쳐 큰 공을 세우고, 우왕 때는 조전원수로서 왜적을 소탕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또한 학천군은 의안대군의 3남으로 대군 자손 중 성격이 가장 활달하고 무공 기질이 있었으며, 문과에 급제하기도 했고 공조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훗날 판좌군부사, 판중추원사, 지돈녕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학천군이 별세하였을때 세종대왕이 이를 애석하게 여겨 관에서 장례를 치르도록 하고 제문을 내리기도 했을 정도로 나라의 공을 지대하게 세우신 조상이다.
전국적으로 제단을 모시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이 곳 가술마을에서도 해마다 정성스러운 제를 지냄으로써, 마을주민들 모두가 항상 건강하고, 단합 잘되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는 원천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마을 입구에 승강장과 쉼터를 겸한 정자가 건립되었으면
다만 좀 아쉬운 점은 마을주민들 모두가 “마을 입구에 승강장과 쉼터를 겸한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생겼으면 좋겠어”라고 이구동성으로 전한다.
대중교통을 기다릴 때 승강장 개념의 공간이 없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나 마을주민들이 지나 다닐때 많이들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한다. 마을초입에는 과속방지턱조차 하나 없어 낮이나 밤이나 차가 지나가면 위험천만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연유로 마을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추진하고 바래왔던 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서두에도 말했듯이, 골프장 건립으로 인해 생긴 마을이라 골프장과 약간의 마찰이 있지만, 이제는 서로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가 아닌 상생관계를 유지하길 바라며, 서로 협조하고 화합해서 크고 작은 마찰들이 순탄하게 해결되길 바란다는 소망도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동/네/사/람/들/

이규원 이장
이규원 이장
크고 작은 마찰이 조화롭게 해결되었으면

골프장 관계자와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마찰이 있는데 조화롭게 해결되었으면 좋겠고, 서로 협조하고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함께 화합해서 원만하게 해결되어 앞으로는 더욱 더 잘 지내길 희망하며, 마을분들에게는 “항상 대소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길 기원드리며, 앞으로도 마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석휘 노인회장
이석휘 노인회장
마을숙원사업인 쉼터 건립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동네이장과 22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거치며 마을 어느 누구보다 마을에 절실히 필요한 사항이 무엇이고, 실질적인 도움과 숙원사업의 필요성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이회장은 마을숙원사업인 쉼터 건립이 빨리 이루어 졌으면 좋겠고, 마을 분들이 항상 인화단결해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욱 더 살기좋은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이경순 부녀회장
이경순 부녀회장
부녀회와 노인회가 더불어 화합해 마을 발전되길

어르신들의 취미생활과 치매예방을 위해 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분을 모시고 1년 6개월정도 해왔던 문화교육(종이접기, 공예작품만들기)이 지속되지 못한 점에 대해 조금의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 부녀회와 노인회와 더불어 화합해서 마을의 발전을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고, “사회복지단체에서 정기적으로 마을을 순회하면서 봉사하실 수 있는 분을 보내줬으면 좋겠다” 라고 밝혔다.





이완휘 새마을지도자
이완휘 새마을지도자
이웃간의 정이 넘치는 마을을 유지했으면

“마을 옆 큰 도로에 요철이 많아 농기계나 자동차가 지나갈 때 많이 위험하고, 불편한데 시정을 좀 해줬으면 좋겠고, 마을 주민들 항상 건강하고, 하시는 농사일 모두 잘 됐으면 좋겠고, 항상 지금처럼 화목하고 평안하게 이웃간의 정이 넘치는 마을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최광규 동계장
최광규 동계장
마을회관에 에어컨이 설치되었으면

“추위가 물러간지 채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더위가 조금씩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라고 전하며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땀도 많이 흘리시고, 많이 지쳐하시는 모습 보시면 안타까움을 많이 느껴 다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마을회관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좀 더 편안히 시원하게 여름을 지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양헌주 청년회장
양헌주 청년회장
농촌경제와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 농촌마을이 소득증대 차원에서 도자기 마을을 운영하고 , 체험마을 프로그램 (두부 만들어 먹기, 고구마 캐기등)을 통해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촌경제와 농가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하며, 덧붙여 “덤바위 주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러 나가실 때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보수공사 때문에 없어져 많이 안타깝고 새로운 징검다리가 생겨 마을 분들이 좀 더 안전하게 다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희망을 밝혔다.



우/리/동/네/유/적/지 전주이씨 의안대군 학천군파 제당

이 제당은 가술마을이 생겨나고 2007년 새로이 지어진 전주이씨 의안대군 학천군파 를 기리기 위한 제당이다. 학천군은 의안대군의 3남으로 휘는 징(澄), 시호는 양정(良靖)이며 학천군(鶴川君)으로 봉군되었다. 대군 자손 중 성격이 가장 활달하고 무골 기질이 있었으며 13세에 산원(散員)에 임명되어 낭장(郎將)을 지냈다. 1396년(태조 5)1월에는 문과에 급제하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1412년(태종 12)5월에는 우군총제에 임명되었으며, 1414년(태종 14) 9월 하절사로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1417년(태종 17) 7월 동지돈녕부사에 발탁되었으며 이듬해 4월 좌군도총제에 임명되었다. 1419년(세종 1) 7월 표전(表箋)을 받들고 북경을 다녀오라는 어명을 받아 북경에 가서 황제를 알현하고 10월에 돌아왔다. 1423년(세종 5) 5월 지돈녕부사가 되었고 12월에는 경상도 좌도병마절제사에 임명되었다. 1425년(세종 7) 중군도총제로 발탁되었다. 1426년(세종 8) 절일사(節日使)로 3월에 북경에 다녀와서 6월에는 유후사선위사(留後司宣慰使)의 자격으로 다시 북경에 다녀왔다. 1429년(세종 11) 판좌군부사, 1432년(세종 14) 3월 판중추원사, 1434년(세종 16) 9월 지돈녕부사로 임명되었다. 1435년(세종 17) 8월에 별세하니 세종대왕은 군의 별세를 애석하게 여겨 조회를 2일간 정지하고 관에서 장례를 치르도록 하고 제문을 내렸을 정도로 많은 업적과 공을 쌓아 해마다 전국적으로 조상의 업적을 기리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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